고양시민축구단 신입생을 소개합니다: (2) 고양의 푸욜이 되고 싶은 송민수
[2017-08-06]
푸욜을 동경하고 닮고 싶은 청년 송민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카를레스 푸욜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든든한 기둥이었고 훈훈한 미담 생산하는 등 다방면에서 그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선수를 롤모델로 삼아 필드 위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청년이 있다. 바로 이번 여름 고양시민축구단(이하 고양)에 입단한 뉴페이스 송민수 선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1장 친구 따라 강남 갔다. 송민수의 어린 시절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타 운동선수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운동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의 운동신경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이 호주머니 속 송곳은 언젠간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계기가 된 것은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태권도다. 이때부터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본인의 운동능력이 괜찮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사귄 친구가 축구를 무척 좋아했고 지역 클럽에 다니고 있었는데 여기에 흥미를 느껴 자연스레 합류하게 되었다. 새하얀 도복에서 화려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송민수의 축구 인생은 시작된 것이다.
2장 늦깎이 축구선수의 자세 축구선수를 꿈꾸는 사람들은 대게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점을 봤을 때 송민수는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전문적인 훈련을 광명중학교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본인 또한 처음 접해보는 문화와 훈련으로 적응하는데 매우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남들보다 뒤에서 시작했기에 이를 악물고 따라잡고자 했고 조금씩 나아갔다. 결국 이런 자세가 중학교 2학년 동계훈련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이때가 최고 전성기라 말할 정도였는데 진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광명중 시절. 어찌 만수라는 별명이 살갑게 느껴지지 않는가?)
여기서 송민수의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공격수도 본 적이 있다. 물론 비중을 따지면 팀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 많이 뛰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자리를 맡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3학년 선배들이 뛰는 경기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로, 같은 연령대 경기에서는 수비수로 뛴 것인데 여기서 팀의 신뢰를 엿볼 수 있다. 축구란 서로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맡은 위치를 바꾸는 것에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것을 놓고 봤을 때 경기마다 최전방과 최후방을 바꿔가며 맡긴다는 것은 그 선수의 능력은 물론이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준을 충족한 것이 송민수였고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그래도 본래의 자리가 있는데 변화를 주는 것이 악영향이 되지 않았을까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담백한 답변이 이어졌다. ‘물론 그러한 우려는 있었지만 경기를 하면서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값진 경험이 되었다.’하고 말한 것이다. 판에 박힌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정성은 박혀있지 않았다. 이것으로 그 당시 축구에 대한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3장 잠깐 쉰 것은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듯 슬럼프가 없었던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송민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앞서 최고의 전성기라 했던 중학교 2학년을 보낸 뒤 맞이한 3학년 시절 예고도 없는 하락세를 맞게 된다. 이전의 경험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워지고 하루하루 힘이 들고 운동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에 있어서도 풀리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여주 세종대왕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러한 시기를 보내고 안산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다행히 신입생 때 자신을 힘들게 했던 슬럼프를 극복하며 실력과 자신감을 되찾는 시간을 가졌다. 그 덕에 고학년 주말리그에 1학년 임에도 간간이 출전하며 내공을 쌓아갔다. 하지만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또 한번 사단이 벌어지게 된다. 이번에는 본인이 아닌 학교의 문제였다. 당시 안산고등학교에는 감독과 총감독이 있었다. 그런데 서로 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며 감독이 몇몇의 선수들과 함께 나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전학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총감독의 만류로 팀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지만 팀은 많이 기운 상태였고 고스란히 선수 개인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3학년이 되었고 주장을 맡았지만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여기에 대학교 진학을 두고 감독과 멀어지게 되고 개인적인 일까지 겹치며 결국 축구화를 벗게 되었다.
그 뒤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축구를 가르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치를 누비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고 한다. 특히 경기를 뛸 때와 끝나고 난 뒤의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은사님이 고양의 선수 선발에 대해 알려주었고 지체 없이 테스트를 보게 되었다. 그 결과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되었고 훈련을 하며 데뷔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쉰 시간이 있어 아직까지는 힘들고 무겁지만 금방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